161016 블랙메리포핀스 밤공
한스:이경수 / 헤르만:전성우 / 안나:송상은 / 요나스:이승원 / 메리:김경화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취향이 아니어서 아쉽다. 좀 큰 스포는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결말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었고 특정 씬에 대해서는 스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전 버전을 안 봐서 한스 버전과 어떤 점이 다른 지는 알지 못하지만... 한스 버전도 봤었더라면 뭐가 달라졌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을텐데. 어쨌든 유튜브에서 넘버 들었던 건 좋았고 적어도 프레스콜했던 장면들은 취향인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ㅠㅠ
안나. 이 극이 취향에 맞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안나. 안나의 트라우마가 생기는 장면 스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고통스럽게 나타내는 것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무대 위에서 고통받고 있는 안나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싫고, 어쩌면 이렇게 앉아만 있는 나 역시 헤르만, 요나스, 한스가 갖게 되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 것 같은 느낌. 그 장면에서 안나가 주저앉을 때까지만 해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대 위에 엎드려서 뒹구는, 고통받는 안나의 모습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물론 '강간' 이라는 장치가 굉장히 큰 상처를 입히고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 장치이자 임팩트 강한 소재이며 극 내에서의 최면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꼭 사용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식이 있냐? 라고 나에게 되묻는다면 뭐가 있다, 라고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이전에 안나들이 정말 힘든 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극도 이런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아,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많은 극들에서 여캐의 각성이나 트라우마, 변화하는 계기 등에 비슷한 소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건 아닌가라는 반성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굳이 강간이 아니더라도 변화할 수 있고, 성자할 수 있는데, 수많은 남캐들이 그렇듯이. 어쨌든 적어도 이 극에서 안나가 소비되는 방식은 굉장히 불편했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장면 이후, 가족이었던 헤르만이 다가와도 놀라며 덜덜 떠는 안나를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너무 마음 아팠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게 될 상처와는 별개로, 가장 큰 상처를 받을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더 큰 미래를 위해, 있었던 다른 아이들도 안나에게는 그레첸 박사와 다를 바 없이 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메리가 오기 전까지는, 다른 아이들의 손길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뿌리치고 울고 덜덜 떨고. 메리가 와서 안아줄 때 소리없이 소리지르며 우는 모습이 정말. 안나들에게 너무나 배려가 없는 극이야 정말.. 끝나고 나서도 같이 본 친구와 한참동안 할 말을 잃었다. 기억을 되찾은 후에 다시 기억을 지울 것이냐는 질문에 요나스는 그러게 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것에 동의하냐는 박사 말에 안나가 '동의합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요나스. 사실 요나스는 자리 때문에 위치적으로? 제일 멀게 느껴져서 많이 보지 못했다. 제일 많이 본 건 아무래도 안나와 헤르만. 헤르만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이기 때문에 자리가 멀었지만 계속 볼 수 있었고, 안나는 코앞에 있었으니. 하지만 요나스는 반대편이라 보기가 좀 힘들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버전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요나스 버전일 것 같다. 제일 많이 못 봐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요나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게 궁금해서 그런가. 한스는 비교적 능동적으로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메리와 대면한다. 그리고 내가 본 건 헤르만 버전이기 때문에 헤르만의 생각 역시 알 수 있고. 하지만 요나스는 그렇지 않다. 초반에도 헤르만이나 한스에 비해 살짝 늦게 등장하고 그들에 비해서 덜 화내고, 덜 표현한다. 요나스의 생각은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적게 말하기도 하고. 무튼. 안나가 강간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요나스에게 생긴 가장 큰 상처는 아마도 살인? 물론 그 전의 실험들로 인한 트라우마도 많이 남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상처이지 않을까. 안나의 강간 장면을 지켜 봐야 했음+내가 사람을 죽였음의 트라우마.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요나스에게서 토비가 보였다(?) 스위니에서 토비 다른 배우로 봤었는데 왜지.. 특히 그레첸 박사를 실수로(?) 죽인 후의 모습에서.
헤르만. 모래사나이. 아마도 헤르만의 입장에서 계속 설명을 하기 때문인지 헤르만의 입장에서 가장 많이 극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한스 버전을 안 봐서 모르지만 이전 버전에서는 헤르만이 짜증나게 느껴졌다고 들었는데 헤르만 버전에서는 한스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잔인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잔인함. 헤르만은 자기가 모래사나이가 될까봐 두려웠던 걸까. 뭔가, 초반에는 계속 헤르만 위주로 봤는데 안나 강간씬 이후로는 안나 위주로 보게 되서 헤르만에 대한 감상이 별로 안 남은.....
헤르만 노래는...응... 목소리가 둥글게 감싸는 편이 아니라 자꾸 튀어나오는 느낌. 합창에서도 자꾸 튀어나오는.... 혼자 나레이션 할 때는 좋았지만 노래할 때는 자꾸 삐져나와서 좀 아쉽. 근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연기는 역시 좋았다. 요나스 봐! 하면서 그레첸 박사 찌르는 장면에서 그 절박함과 고통이 느껴지고. 이후에 혼자 앉아 있는 안나를 안아 주려 하지만 피하고 덜덜 떨기만 하는 안나를 차마 만지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혼자 한 쪽으로 나와서 토하는 것도 좋았고.
메리. 처음에는 분명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보모로 위장했겠지만,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거겠지?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자신이 그레첸 박사를 죽였고 집에 불을 냈다고 거짓말을 했을 거고.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지막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주려고 했던 것이고. 그래서 아이들이 그 기억을 찾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도망쳤을 테고. 사실 처음에는 정말 메리가 그레첸 박사를 죽이고 방화했다고 생각해서 그 이유가 뭘까라고 했었는데. 그냥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거였다. 메리는 아이들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아이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숨겨주려했던 거겠지.... 라고 셀프해석.... 메리가 너무 밋밋하게 연기, 노래해서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음..
궁금한 건 맨 처음에 아이들 각자 자기 의자에 앉아있을 때 되게 불안한 증세? 보이는 거. 그것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요나스는 못 봤고 안나는 자꾸 손 비비는? 닦는? 그런 모습, 한스는 타자 치는 듯한? 모습. 그게 각자의 트라우마랑 연결되는 건가? 두세번 더 보면서 생각해 보면 좋겠지만 그냥 다시 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내가 힘들면서까지 보고 싶을 정도로 극에 치인 것도 아니었고.
직감에서 빰!빰! 하면서 어깨 맞춰서 돌리는 부분이 생각보다 덜 각이 맞아서 약간 아쉬움? 예전 프콜 영상 보고 좀 기대했는데ㅠㅠ 그리고 한스가 자꾸 발로 요나스 똥침 해가지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기꺼이 불행과 동행하겠습니다. 결국 기억을 지우지 않기로 한 아이들의 결정을 나는 이해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다. 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려 하는 이유가 뭘까. 고통의 기억들이 지금처럼 불시에 찾아와서 발목을 잡고 괴롭힐까봐? 아니면 정말로 그 고통을 가지고 가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필이면, 약에 취해서,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도 않을 때, 나가서 안나를 구해줘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들 역시 상처 받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의 상처는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지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하나. 차라리 아이들의 기억을 꼭꼭 묻어버렸으면, 다시는 나올 수 없게. 이미 한 번 파헤쳐졌던 기억, 더 깊은 곳에 숨겨버렸으면. 방문을 열고 기억을 넣어 둬, 방문을 닫아 천천히 도망쳐. 제발 멀리 도망쳐. 뒤돌아보지도 말고.
그냥 생각보다, 블이 나한테 좀 많이 힘들었던 극이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후기 쓰다 보니까.
--이 밑으로는 161205에 추가함
나는 워낙 불호라 어차피 자첫자막했고 트위터에는 긴 후기를 올리지도 않았지만, 서작이 불호 후기 올린 사람한테 직멘 쏜 거 보고 진짜 좀 당황스러웠다;;;; 이전에도 그렇게 직멘 쏜 거 본 적 있었는데 진짜 그게 뭐 하는 거야.... 아무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안나라고 서작이 쓴 거 보고 좀 웃겼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라서 강간당하게 한 거야? 그리고 뒷수습은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으며 각성하는 것은 다른 형제들? 안나가 고요했으면 좋겠다고, 감히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트윗한 것도 봤는데, (찾아보니 지금은 지움;;;) 그럴 거면 왜 그런 캐릭터를 만든 걸까? 안나 최면 방에는 피아노만 한 대 존재한다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편안히 듣고 있다고?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야 그게?;;;;;;; 게다가 결론은 그래도 우리 모두 이걸 기억하는 게 좋겠어~ 행복해~ 이렇게 가는 거 진짜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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