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윤소호 / 베를렌느:정상윤 / 들라에:강은일

 

   조명이 난리나고 은라에 실수가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았던 공연. 특히 후반부 감정이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설득력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조명만 아니었으면 내가 본 랭보 공연 중에 손에 꼽는 레전 중 하나였을텐데.

 

   은라에가 혼자 노래 부를 때부터 조명이 너무 어두웠고 하얀달 전에 베를렌느와 랭보가 들어왔을 때도 조명이 밝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소호랑 토로가 애드립으로 어떻게 넘기긴 했지만 그래도 조명은 계속 어두웠고. 그리고 순간 조명 확 꺼지고 조명 돌아가는 소리가 났는데 무서웠다. 진짜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1-2초 사이에 얼마나 들었던지.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이어간 배우들이 정말 대단했다.

 

   지난번엔 파이프를 두고 나가서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파이프를 건네줬을 때 랭보가 베를렌느에게 연필을 건네줬는데 이번에는 파이프를 두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랭보가 베를렌느에게 먼저 연필을 건네줬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그 연필을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건네줬고. 이 일련의 과정이 마치, 베를렌느와 함께 모래바닥에서 시를 썼던 그 나뭇가지를 주고받는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베를렌느의 왼손을 펜으로 찌르고 난 후에 그 펜을 계속해서 들고 있었는데 평소처럼 그 펜을 그냥 돌려보거나 하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펜촉에 묻은 피를 자기 소매에 닦는 모션을 취했는데 진짜 와... 랭보는 정말 악마새끼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베를렌느가 랭보에게 총을 겨눌 때, 이렇게 분노가 강하게 느껴지는 랭보는 처음이었던 듯하다. 목에 매어져있는 리본을 풀어헤치고 단추를 뜯어버리고 총을 들고 있는 베를렌느에게 다가가서 그 총구를 아예 자기 목에 대기까지. 그 전에도 항상 총구를 자기 입 쪽으로 가져가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자기 몸에 직접 댄 건 처음 봐서 진짜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백 개쯤 떴다. 정말 랭보가 그 상태에서 총의 방아쇠를 당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베를렌느가 쏜 총에 맞은 후에는, 풀었었던 리본으로 손을 묶었고.

  

   베를렌느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윤소호 사랑해... 알제 때도 그랬지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허공 속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연기가 너무 좋다. 내 시를 이해해주는 사람, 그 사람뿐이라고 하며 베를렌느 방향을 바라볼 때의 표정, 그리고 랭보와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하며 바닥에 키스하는 토로베를렌느를 옆에서 바라보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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