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08 밤공

제이크:이석준 / 조이:윤나무 / 로빈:이지현 / 트와일라:이진희 / 라우디:문성일

 

   볼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의외로 끝나고 나서는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 '깔끔하게'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새 시놉도 줄거리도 안 읽고 가는 습관이 들어서, 단순히 장애아들과 그 아버지...가 나온다는 것만 알고 갔는데 예상밖의 이야기 전개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최근에 본 극이 뉴시즈...뿐이고 그나마 울었던 극은 헤드윅이었고, 넥 이후로 정말 무너질 만큼 울었던 관극이 없어서, 좀 울고 싶은 마음에 보러 간 거였는데 정말 그에 맞는 선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중반까지만 해도 울컥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오열할 극은 아닌데?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오만한 생각이었다. 제이크가 쓰러지는 건 정말 예상밖의 전개였고 마지막 결말 역시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현실에서 이런 가족이 있다면 정말로 이런 일이 있을 법하다는 점에서 이 극은 잔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제이크가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약에만 의지하게 된 이후, 제이크와 로빈의 얘기를 듣게 되는 조이. 그 상황 자체가 너무나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Kill Me Now가 Heal Me Now로 들린다는 것. 어쩌면 제이크에게는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Heal일수도 있겠다는 생각. 사실 보는 중에는 조이가 트와일라에게 아빠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저 배은망덕한 새끼가...?라는 생각만 들었었는데 끝나고 생각해보니, 조이의 입장에서는 그게 정말 제이크를 사랑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라우디가 말한 것처럼 조이는 자신이 왕인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세상에서 가장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 자신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오면서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빠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정말 그러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는, 저게 어떻게 아빠한테 할 수 있는 말이야? 그것도 아파서 힘들어 하는 아빠에게,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조이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을 테니까.

   이 극은 단순히 장애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장애로 인해 모두가 아파하는 가정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픔에 대해서 보여주는 만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고 받는지 역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각각 다른 스타일의 사랑이기는 하지만, 제이크가 조이와 트와일라, 그리고 로빈에게 주는 사랑, 트와일라가 조이와 라우디에게 주는 사랑 등등. 그런 사랑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이가 성장해왔고 제이크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사람들이 있었고 제이크가 없는 조이의 미래가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중반까지는 눈물이 확 나지는 않았는데, 마치 운동회에서 콩주머니 던져서 터지는 박이 터지는 것처럼, 눈물이 터져버린 순간은 양복을 입고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서 있던 조이와 제이크가 등장했을 때. 그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이길 바라는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사람이 너무나 멀쩡하게 돌아다니면서 쓰레기통의 종이 쪼가리들이 날리고, 베개싸움을 하면서 오리털? 같은 베개 속에서 나온 것들이 날아 다니는 것이 정말 너무 현실 같은 꿈이라서 더 아팠다. 게다가 그 장면 바로 뒷 장면이 제이크가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이라는 게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제이크와 조이의 마지막 결정. 다들 제이크가 조이가 자신을 씻겨주길 원한다고 말했을 때 그게 뭘 의미하는 지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다는 것도 아프고. 다들 그들이 얼마나 아픈 지 알기 때문에 말리지 못하는 것이겠지. 사랑하기 때문에 말리지 못하는 거고.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차라리 대신하겠다고 하고,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고. 정말 잔인한 극이라는 생각.

 

   아직도 암전 속에서 퍼지던 물소리, 빗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기분. 암전 속에서 찰박찰박 퍼지던 그 물소리마저 너무나 잔인하다. 솔직히 암전이 많은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극에서는 암전이 없었다면 두 배로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암전도 그냥 아무 소리 없이 불만 꺼지는 것이 아니라 배경음악이 있는 암전이라서 참 다행이다 싶다. 아니었다면 그 많은 울음소리들을 숨겨주지 못했을 거야.

 

   오히려 볼 때보다 되짚으면서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더 힘든 건 뭐지. 깔끔하게,,, 감정이 정리됐다고 쓴 건 취소해야 될 판. 다시 생각해 보면 어느 장면 하나 빼놓을 수 없게 슬픈데. 제이크가 조이를 목욕시켜 주는 첫 장면에서부터, 제이크의 목소리로 그의 책을 듣는 것까지. 자첫자막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한 번은 다시 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극을 다시 한 번 볼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아마도 그건 전적으로 라우디의 존재 덕분이 아닐까. 진짜 인간 비타민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사실 라우디도 아픈 인물인데, 라우디의 아픔은 밝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조금 더 라우디를,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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